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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승우야 승호야, 끝이 아니야

다음 달 개막하는 도쿄올림픽 남자축구에서 이승우(23·신트트라위던)와 백승호(24·전북)는 볼 수 없다. 김학범(61)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16일 올림픽팀 2차 소집훈련 대상 선수 23명을 발표했는데, 두 사람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달 말 발표하는 최종 엔트리 18명은 2차 소집훈련 참가자 중에서만 뽑는다. 올림픽 출전 가능 나이(24세 이하) 선수 중 가장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두 사람이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소식이다. 두 사람이 빠진 게 가나와 두 차례 평가전(1차전 3-1승, 2차전 2-1승)에서 이들이 보인 경기력 때문이라고 단정해선 곤란하다. 김 감독은 가나전에 앞서 “훈련 프로그램을 체력 위주로 짰다. 체력을 바닥까지 떨어뜨린 뒤 선수들이 실전에서 어떻게 극복하는지 중점적으로 살피겠다”고 말했다. ‘극복’이라는 단어가 정성적인 것처럼 들려도 현대 축구에서는 지극히 정량적 개념이다. 최고조로 치솟은 심장박동이 정상 상태로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뛴 거리가 늘면서 평균 심장박동수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등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두 선수가 제외된 건 평가전 내용 뿐만 아니라 훈련까지 포함한 데이터 값에서 김 감독이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두 선수의 커리어 로드맵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승우는 연령별 메이저 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모두 출전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인터뷰마다 “오랜 기간 해외에서 지낸 내게 태극마크는 특별하다. 국가에서 불러준다면 언제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하지만 마지막 퍼즐이랄 수 있는 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했다. 백승호는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주어지는 병역 혜택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앞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대회 직전 햄스트링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병역을 해결할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인 도쿄올림픽마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유럽 진출 재도전을 꿈꾸는 백승호에게 병역은 당분간 무거운 숙제가 될 것 같다. 좌절감이 클 텐데, 다행히 두 선수 모두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이승우는 “속상하고 힘든 날이지만, 나보다 컨디션 좋은 선수가 (도쿄에) 가는 게 맞다. 감독님 선택이 옳다. 이젠 팬 입장에서 응원하겠다”고 썼다. 백승호는 “항상 그랬듯 무언가 끝나면 또 새로운 시작이 있다. 또 한번 잊고 싶지 않은 하루”라고 토로했다. 두 선수 모두에게 많은 팬들이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올림픽 출전 불발이 그저 ‘실패’로 남지 않으려면, 두 선수는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이적을 모색하는 이승우는 모든 조건을 떠나 ‘꾸준히 뛸 수 있는 팀’을 찾는 게 급선무다. 전북에 자리를 잡은 백승호는 팀 내 국가대표급 동료들과 경쟁부터 이겨내야 한다. 두 사람 다 이제 20대 초중반이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여전히 기회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1.06.1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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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왼쪽 수비, 이기제·강상우 어때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의 잔여 경기가 다음 달 3~15일 국내에서 열린다. 2차 예선 준비에 한창인 파울루 벤투(51·포르투갈)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시선은 아마도 왼쪽으로 향할 것 같다. 늘 그렇듯 최우선 관심사는 왼쪽 전방에 포진할 에이스 손흥민(29·토트넘) 합류 여부인데, 다행히 별 지장은 없을 듯하다. 24일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을 마치고 곧장 귀국하면,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코호트 격리한 뒤 일정에 맞춰 경기에 나설 수 있다. 물론 출입국 전후로 받는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모두 음성이라는 전제에서다. 시선이 왼쪽에 꽂히는 또 다른 이유는 수비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후방 빌드업으로 공을 소유하면서 측면으로 패스해 공격 활로를 개척하는 전술을 자주 쓴다. 이 전술에서는 좌우 풀백이 공격과 수비 지역을 활발히 오가며 연결 고리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김태환(31·울산), 김문환(26·LAFC) 등이 버틴 오른쪽에 비해 왼쪽 무게감이 처진다. 그간 왼쪽을 책임졌던 김진수(29·알 나스르)와 홍철(31·울산)이 부상 여파로 공교롭게도 둘 다 컨디션이 온전치 못하다. 대체 자원이 필요할 때, 벤투 감독은 미리 정해놓은 선수 풀(pool)부터 먼저 들여다본다. 그간 벤투 감독이 보여줬던 성향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야를 좀 더 넓히면 어떨까 제안한다. 벤투 감독의 선수 풀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프로축구 K리그에서 괜찮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왼쪽 풀백 2명이 있다. 벤투 감독의 왼쪽 수비수 고민 해결을 위한 첫 제안은 이기제(30·수원 삼성)다. 올 시즌 수원 삼성은 산하 유스팀인 매탄고 출신 선수들, 이른바 ‘매탄소년단(MTS)’ 활약을 앞세워 K리그1(1부) 3위에 올라 있다. 이기제는 왼쪽 측면에서 MTS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K리그 정상급 왼발 킥 능력을 앞세워 14경기에서 3골·3도움을 기록 중이다. 최근 4경기 연속 공격포인트 등 한껏 물이 올랐다. 두 번째 제안은 포항의 ‘전략 무기’ 강상우(28)다. 올 시즌 크로스 패스 1위(66회), 키 패스 6위(25회) 등 플레이메이커급 활약을 펼치는 수비수다. 포항 공격진의 득점 도우미로도 맹활약하는데, 시즌 도움이 4개다. 주 포지션은 왼쪽 풀백이지만, 오른쪽 풀백으로도, 심지어 윙 포워드로도 뛸 수 있다. 대표팀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이를 침범하거나 무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우선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분주히 K리그 경기장을 오갔을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두 선수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하다. 벤투 감독이 이들을 뽑을 수도 있고, 외면할 수도 있다. 측면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0-3으로 대패했던 3월 한일전의 악몽이 떠올라 하는 충정 어린 제안이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1.05.14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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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석현준으로 살 건가, 브루스 숙으로 살 건가

병역 기피 혐의로 형사고발 된 프랑스 프로축구 트루아 공격수 석현준(30)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석환 병무청장이 2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석현준을 언급한 게 도화선이 됐다. 정 청장은 “석현준은 병역법상 국외 여행 허가 의무를 위반한 병역 기피자다. 2019년 6월 고발 조치했으며, 외교부에서 여권도 무효화 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 국가대표까지 지낸 공인으로, 석현준에겐 아직 기회가 있다. 조속히 귀국해 합당한 처벌을 받고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게 도리”라고 당부했다. 석현준은 지난해 12월 병무청이 공개한 2019년 병역기피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만 28세가 되는 2019년 4월 1일 이전에 귀국해야 하는 규정을 어기고 여전히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앞서 병무청을 대상으로 진행한 해외 체류 연장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여권이 만료돼도, 당장은 취업 비자 유효기간이 남아 국가간 이동을 제외한 문제는 없다. 다만, 비자가 만료되면 한국 국적자로는 더는 해외에 머물 수 없다. 불법체류자로 신분이 바뀐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정 청장 권유대로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게 첫 번째다. 2015년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활동을 중단하고 병역 의무를 마친 골퍼 배상문(35)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배상문은 만 28세를 넘기고도 귀국하지 않았다. 병무청이 고발하자 국외 체류기간 연장을 위해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이후 패소하자마자 귀국했고, 국내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직후 현역 입대했다. 싸늘했던 여론도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발표 이후 누그러졌다. 국적을 바꾼 야구선수 백차승(41) 사례도 있다.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 조치(2000년)된 건 석현준·배상문과 비슷하다. 귀국을 거부하다 5년 뒤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2016년 국적 회복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병역 기피 목적이 명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7년 이후 두산 2군 투수 인스트럭터로 활동 중이지만, 여전히 외국인 신분이다. 어쩌면 석현준은 제3의 길을 염두에 뒀을지 모른다. 올림픽 또는 아시안게임에 와일드 카드(제한 연령 초과선수,원래 24세 이상이나 올해만 25세 이상)로 출전해 입상하는 거다. 그렇게 병역 혜택을 받는 박주영(36·서울) 사례다. 박주영은 AS모나코(프랑스)에서 뛰던 2012년 모나코 영주권을 취득해 병역 회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운좋게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받았다. 현재는 이 방법이 불가능하다. 2015년 병역법 개정으로 법 위반자는 특례 혜택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석현준의 선택지는 귀국 또는 귀화다. 결정 기준은 아마도 ‘은퇴 후 삶’이 아닐까 싶다. 가족과 함께 할 미래의 터전을 어디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석현준’으로도, ‘브루스 숙(석현준 별명)’으로도 살 수 있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1.04.3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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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이강인은 6월에 어느 감독과 함께해야 할까

“월드컵 2차 예선도 물론 중요한 대회지요. 다만, 올림픽팀은 세계대회 본선을 앞두고 있잖아요. 6월 소집 훈련 및 평가전과 관련해 (대표팀을 이끄는) 파울루 벤투 감독님의 배려와 협조가 절실합니다. 언제든 얼굴을 맞대고 논의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28일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난 김학범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이날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도 김 감독은 “6월이 올림픽 메달권 도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도쿄올림픽 본선을 앞둔 김 감독과 올림픽팀의 주요 일정은 6, 7월 소집훈련 및 평가전이다. 특히 6월은 최종엔트리 18명(6월 30일 제출)을 결정하기 전 마지막 소집훈련이 열리는 때다.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24세 이하 선수들의 기량을 살펴 엔트리 윤곽을 잡고, 부족한 포지션에 와일드카드(24세 초과 선수) 투입을 고민할 시점이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온두라스(북중미), 뉴질랜드(오세아니아), 루마니아(유럽)와 같은 조에 묶여 ‘최상의 조 편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 감독 생각은 다르다. 그는 “뉴질랜드를 뺀 나머지 세 팀 전력은 엇비슷하다. 조별리그에서 2승 1패를 하고도 골득실차로 탈락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대 변수는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다. 같은 시기에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치른다. 이강인(발렌시아), 이동준, 이동경(이상 울산) 등 24세 이하 선수 일부는 대표팀과 올림픽팀을 오가야 했다. 김학범 감독은 6월에 대표팀 눈치를 보지 않고 (24세 이하) 선수를 마음껏 차출하고 싶다. 하지만 벤투 감독 입장은 다르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표팀과 올림픽팀이 선수 차출과 관련해 의견을 나눈 적은 없다. 다만, 벤투 감독은 ‘선수 관련 권한은 대표팀 우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원칙적으로는 벤투 감독이 옳다. 다만, 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도 절대 가볍지 않은 만큼, 두 팀 간에 충분히 조율해야 한다.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는 만큼, 조정기능이 중요하다. 바로 축구협회 대표팀전력강화위원회(이하 강화위원회)가 해야 하는 일이다. 강화위원회가 대표팀과 올림픽팀 선수단 구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이 매끄럽게 오갈 수 있는 통로 역할까지 맡아야 한다. 이미 지난달 축구 한일전은 대표팀 선수 선발 방식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벤투 감독은 선수 상태를 꼼꼼히 살피지 못했고, 축구협회는 차출 과정에선 선수 소속팀과 대화가 부족해 마찰음을 냈다. 반드시 개선해야 할 빈틈들이다. 과거 축구협회는 기술위원회(강화위원회 전신)를 앞세워 대표팀 선수 선발과 운용에 지나치게 간섭해 물의를 빚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편한 게 강화위원회인데, 최근엔 오히려 역할이 축소되다 못해 유명무실해진 느낌이다. 넘쳐서도 안 되지만, 모자란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리 한 번 물어보자. 2001년생으로 올해 20살인 미드필더 이강인은 벤투 감독의 대표팀과 김학범 감독의 올림픽팀 중 어느 팀에서 뛰어야 하나. 자, 이제 강화위원회 대답을 들을 차례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1.04.29 08:34
축구

[송지훈의 축구·공·감] 선정 포기 ‘한국 축구 베스트 11’…여러분 선택은

고민의 출발은 15일 나온 ‘발롱도르 드림팀’이었다. 축구전문지 ‘프랑스풋볼’은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세계 최고 축구선수를 뽑는 발롱도르 시상식을 한 해 멈췄다. 대신 축구 역사를 통틀어 전 세계 베스트 11을 뽑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펠레, 마라도나, 베켄바워, 야신…. 포지션마다 이름을 확인하면서 기분 좋은 긴장감이 일었다. 전 세계 베스트 11을 확인하니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한국축구는’ 하고 궁금증이 생겼다. 1882년 인천 앞바다에 정박한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호에서 태동한 한국 축구. 130여년 역사를 대표할 11명을 가리는 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와 달리 진행 과정은 암초투성이였다. 11명을 담을 그릇부터 말썽이었다. 4-4-2냐, 3-4-3이냐, 3-5-2냐. 한국 축구 역대 포메이션을 놓고 갈등했다. 포지션별 숫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많이 쓰는 4-4-2로 정했지만, 더 큰 고민이 이어졌다. 포지션별로 3배 수 후보군을 선정하는데, 온통 뺄 수 없는 이름뿐이었다. 최정민, 이회택, 김재한,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최용수, 이동국 중 센터포워드 부문에서 어떻게 3명만 고를 수 있을까. 김도훈과 박주영은 또 어쩌고. 고민 끝에 1차로 명단을 만들어 전문가 자문을 구했다. 명단 위에는 온통 ‘빨간 펜’이었다. 여러 이름이 빠지고, 그만큼의 새 이름이 적혔다. 이어 선정위원에게 “11명을 골라달라”며 명단을 내밀었다. 많은 선정위원이 선택 대신 질책했다. 한 원로 축구인은 “단 한 명도 뽑고 싶지 않은 포지션이 있다. 내가 예상한 후보군과 다르다”고 했다. 흥미로운 건 발롱도르 드림팀을 두고도 여러 뒷말이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로 뽑힌 샤비 에르난데스(스페인)가 논란이다.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축구 역사를 통틀어 일인자로 인정할 정도는 아니다”는 반론이 쏟아졌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국 축구 최고의 11명을 가리는 데도 수없이 많은 고민과 격한 토론이 필요한데, 하물며 세계 축구 최고의 11명인데 오죽할까. 고심 끝에 한국 축구 베스트 11 선정 작업은 중단키로 했다. 한국 축구를 빛낸 영웅을 골라내는 작업은 깊은 고민과 광범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11명은 고사하고, 그 3배 수의 후보군을 추리는 과정조차도 녹록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발롱도르 드림팀 선정 작업을 완수한 프랑스풋볼과 투표에 참여한 전 세계 축구 전문기자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아시아 축구의 맹주를 자처했던 한국 축구는 20세기 내내 세계 무대에서는 ‘동네북’이었다. 1954년 처음 밟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0-9, 0-7로 호된 신고식을 했다. 그 후로 32년간 본선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복귀하고 2002년 4강 신화를 쓰기까지 수많은 선수가 피, 땀, 눈물을 흘렸다. 이 모든 게 모여 지금의 한국 축구가 됐고, 이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일 거다. 그래도 묻고 싶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한국 축구 베스트 11은 누구인가.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0.12.18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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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축구대표팀 유럽원정, 방역 안전 모범 보여라

코로나19 시대에는 모든 게 상식을 넘어선다. 그동안 상수(常數)로 여기며 살아왔던 많은 것들이 수시로 변수(變數)로 바뀐다. 때가 되면 당연히 열리던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A매치)가 연말이 돼서야, 그것도 나라 밖으로 나가야 간신히 할 수 있는 귀한 이벤트가 될지 누가 알았겠나. ‘유럽 원정’이라는 힘든 길을 마다치 않고 기어이 A매치를 성사시킨 대한축구협회의 노력에 먼저 박수를 보낸다. 이달 두 차례 열리는 A매치는 내년으로 미뤄진 2022년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및 최종예선을 앞두고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기력을 점검하고 조직력을 다듬을 소중한 기회다. 15일 오전 5시(한국시각) 멕시코전. 그리고 17일 오후 2시 카타르전. 두 번의 A매치를 손 모아 기다리는 건 코칭스태프와 선수, 스태프 등 대표팀 구성원뿐만이 아니다. A매치를 기다려온 팬들에게도 놓칠 수 없는 이벤트다. A매치가 중요 수입원인 축구협회에도 중계권료와 스폰서십 수입은 ‘가뭄 속 단비’가 될 것이다. 출발도 하기 전부터 악재나 다름없는 변수가 잇따라 등장해 대표팀과 축구협회 관계자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가장 큰 악재는 역시 코로나19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유럽 대륙에 또 다시 코로나19 확산 광풍이 휘몰아친 모양새다. 평가전이 열릴 오스트리아도 예외가 아니다. 4일 하루 동안 4542명의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 매일 4만명 안팎이 확진 판정을 받는 이웃 프랑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국내와 비교하면 우려스러운 숫자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3일부터 심야(오후 8시~다음 날 오전 6시) 통행금지 조처를 했다. 실내 다중 밀집시설도 일시 폐쇄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유럽 현지에서 축구 A매치를 포함한 각종 스포츠 경기 중단 및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는 보도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아직 (평가전을 허가한) 오스트리아 정부 방침에 변화가 없다. 상황을 철저히 살피며 정상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도 평가전을 앞둔 우리 대표팀의 불안요소다. 당시 무장괴한 여러 명이 빈 시내 중심가 6곳에서 총기를 난사했다. 2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 사건 직후 주오스트리아 한국대사관은 우리 교민에게 “가급적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고, 외출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대표팀 경기 장소는 빈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이다. 테러 관련 우려는 높지 않은 지역이지만, 대비는 필요하다. 평가전을 앞두고 축구협회의 최우선 과제는 ‘안전’이어야 한다. 코로나19로부터, 그리고 혹시 모를 테러 가능성으로부터 선수단을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꼼꼼한 준비와 진행이 필요하다. 방역 잘하고, 불필요한 외출과 이동을 삼가고,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번 유럽 원정 기간만이라도 방역 및 안전 업무를 책임지고 전담할 담당관을 둘 것을 제안한다. 담당관이 국내 및 현지 유관기관과 연락 채널을 가동하면서 방역과 안전의 A부터 Z까지를 철저히 챙겨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한국은 이른바 ‘K-방역’이라고 부르는 국제적인 모범 사례를 탄생시켰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이번 유럽 원정에서 선보일 방역과 안전 모델이 향후 ‘스포츠팀 해외 원정 모범 사례’로 주목 받을 수 있다. 소집, 훈련, 이동, 점검 등 벤투호가 거칠 모든 과정이 스포츠 방역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0.11.06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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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11월에 올림픽팀 축구 한·일전 어떤가요

“대표팀(A팀)과 친선경기라도 치르게 돼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요. K리그 경기장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관찰하지만, 다 같이 모여서 발 한 번 맞춰보는 게 나한테나 선수들한테 좋은 기회니까요. 하지만 사실 다음 달 이후가 걱정입니다. K리그 끝나면 그때부턴 선수를 어떻게 점검할지….” 5일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입소 기자회견을 마치고 흡연실 한쪽에 앉아 홀로 담배를 태우던 김학범(60) 올림픽팀 감독과 마주쳤다. 표정이 어두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9, 1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두 차례의 대표팀 평가전 때문이 아니었다. 김 감독 머릿속은 내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 구상으로 복잡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다음 달 유럽파 위주로 대표팀을 소집해 해외에서 두 차례 평가전(A매치)을 치른다. 상대는 구했다. 장소와 시간을 확정해 조만간 발표한다. 대표팀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은 이번 달에는 국내파를, 다음 달에는 해외파를 직접 만나 소통하고 경기력도 점검한다. 반면, 올림픽팀은 상황이 다르다. 이달 두 차례의 대표팀 평가전 이후에는 계획이 없다. A매치 기간에 소속팀 눈치를 보지 않고 원하는 선수를 불러 테스트할 수 있는 대표팀과는 사정이 다르다. 올림픽 남자축구는 23세 이하(U-23, 도쿄올림픽에 한해 24세 이하) 선수로 엔트리를 짠다. A매치가 아니기 때문에 선수를 불러도 소속팀이 차출을 거부할 수 있다. 평가전 상대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올림픽 남자축구는 16개국이 출전한다. 출전국과 평가전을 하는 게 가장 좋은데, 그럴 경우 상대가 15개국으로 한정된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선수단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 좋은 방안이 없을까. 다음 달 A매치 기간에 도쿄올림픽 개최국 일본과 평가전을 제안한다. 미리 보는 ‘올림픽 축구 한일전’ 말이다. 우선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도쿄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서로 간 경쟁의식이 남달라 피차 괜찮은 스파링 파트너다. 흥행은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윷놀이도 한일전 아니던가. 때마침 두 나라 간 인적 교류의 통로가 열렸다. 한일 양국 정부가 서로 단기간 방문하는 기업인과 외교·공무상 출장자에 대해 일정한 방역 절차를 거치면 격리 조치를 면제하는 내용의 ‘기업인 특별입국절차’를 8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상대국 방문을 원하는 기업인은 초청기업이 작성한 서약서와 활동계획서를 대사관 또는 총영사관에 제출하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출국 전 14일간 건강 모니터링, 항공기 출발 72시간 이내 코로나19 검사 실시, 상대국 체류 시 적용할 민간의료보험 가입 등이 조건이다. 기업인과 외교관에 적용할 ‘특별입국절차’ 대상 범위에 ‘국가대표 운동선수’를 포함하면 절차상 문제가 없다. 입출국 시 2주 자가격리 부담이 사라지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맞대결할 수 있다. 양국 축구협회가 앞장서고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면 될 일이다. 올림픽팀 한일전은 모두에게 이로운 ‘윈-윈’ 이벤트다. 양국 올림픽팀으로서는 본선을 앞두고 선수를 점검하고 실전 감각을 다듬을 기회다. 팬들은 국가대항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양국 축구협회는 경기장 광고판과 중계권 판매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다. 양국 모두 국내파가 올림픽팀 주축이라서 선수 차출 어려움도 없다. 한일 양국은 최근까지도 서로 냉랭했다. 외교적 갈등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문을 걸어 잠갔다. 단절됐던 인적 교류가 7개월 만에 재개된다. 축구가 그 마중물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담배 연기에 한숨을 섞어 내뿜던 학범슨(김학범 감독 별명)은 금연하게 될지도 모르고.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0.10.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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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트로트 열풍이 한국 축구에 주는 교훈

1954년 3월7일과 14일, 일본 도쿄 메이지 진구 경기장에서 열린 1954 스위스월드컵 극동아시아 최종예선 한일전.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을 놓고 숙적 일본과 맞선 한국 축구대표팀 평균 연령은 32.9세였다. 40세 수비수 박규정 등 18명의 엔트리 중 7명이 35세가 넘었다. 당시 20대는 골키퍼 함흥철(24), 공격수 최광석(23), 성낙운(29) 등 세 명뿐이었다. 2년 전인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 대표팀 본선 엔트리 평균 연령(27.8세)보다 5살이 많았다. “지면 현해탄(대한해협)에 빠져 죽겠다”는 각오로 원정길에 오른 ‘태극 아재’들은 일본을 1승1무로 제치고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한국은 왜 베테랑 중심으로 엔트리를 짰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젊은 선수가 없었다. 선수를 키울 기회도 여건도 부족했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기에도 벅찼던 시절, 대표팀 ‘세대교체’는 사치였을지 모른다. 최근 들어 60년 전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축구계 인사들을 종종 만난다. 코로나19 광풍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새 얼굴 발굴 기회마저 앗아가고 있어서다. 올림픽은 전 세계 23세 이하 선수 중 ‘차세대 스타’를 발굴하는 무대인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쿄올림픽이 연기됐다. 내년 예정된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17세 이하(U-17) 월드컵도 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한국 축구의 미래세대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질까 우려하는 이유다. 어떻게 하면 지금과 같은 미증유의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연령별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때다. 파울루 벤투(51·포르투갈) A팀(성인대표팀) 감독부터 연령별 대표팀 감독까지, ‘젊은 피 육성’에 대한 큰 그림을 공유해야 한다. 올림픽, 월드컵 개최에 지금처럼 차질이 생겨도 선수들이 재능과 기량을 드러낼 ‘판’을 깔아주는 게 필요하다. 한국 가요계를 강타한 트로트 열풍이 한 가지 힌트가 될 수 있다. 한 종편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촉발한 트로트 인기는 가요계, 심지어 예능계 판도를 바꿨다. 오랜 기간 트로트는 태진아·송대관·주현미 등이 대표하고, 가요 무대를 통해서나 만나는 ‘구닥다리’로 여겨졌다. 상황이 달라졌다. 임영웅·송가인 등 새 얼굴이 수혈되면서 국민이 함께 즐기는 장르로 거듭났다. 13살(2007년생) 정동원은 향후 50년간 성인가요를 이끌 재목으로 주목받는다. 때마침 대한축구협회가 전국의 만 9~12세 축구 꿈나무 대상 공개 오디션 프로젝트(골든 일레븐)를 내놓는다고 한다. 공들여 준비한 이번 기획이 눈요깃거리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에 찾아낸 ‘흙 속 진주’가 체계적으로 관리받고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트로트가 그랬던 것처럼 축구도, 어려울수록 몸담고 있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0.09.03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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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이제 뛸 시간이야” 제2 전성기 노리는 ‘캡틴’

‘time to work Ki(성용아, 이제 뛸 시간이야)’. 기성용(31)은 16일 소셜미디어에 짧은 이 한 문장을 남겼다. 프로축구 FC서울 입단 협상이 막바지를 향하던 시점이다. 반가운 소식을 예감한 팬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기성용이 K리그 복귀를 암시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기성용의 글을 곱씹어보다가 배경 사진에서 눈길이 멈춰섰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소속이던 지난해 4월 리버풀전 장면. 기성용은 상대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28·이집트)를 수비하던 자신의 모습에 ‘벌써 일 년. 시간 빠르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소셜미디어 게시물의 글자 한 자, 사진 한장에도 의미를 꾹꾹 눌러 담는 그의 스타일을 잘 알기에 리버풀전 사진을 굳이 고른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증은 22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입단 기자회견에서 풀렸다. 취재진 앞에 밝은 얼굴로 선 기성용은 “내가 공식경기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게, 지난해 4월 리버풀전이 마지막이었다. 제대로 뛰지 못한 1년여 동안 차분히 나 자신을 돌아봤다. 잠시 불안했지만, 이제는 자신감과 의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일할 시간’이라는 짧은 메시지 이면에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던 톱클래스 미드필더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녹여 넣은 것이었다. K리그로 돌아오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월 뉴캐슬과 계약이 끝난 뒤 국내 복귀를 추진했지만, 우선 협상 대상자인 서울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전북 현대 등 다른 팀 이적도 고려했지만, 서울에 지불해야 할 위약금(26억원)이 발목을 잡았다. 기대와 다른 상황 전개에 마음 상한 기성용은 마요르카(스페인)와 6개월 단기 계약을 맺고 한국 땅을 떠났다. 반년이 흘렀고 상황은 달라졌다. 시즌 개막 전 우승권으로 손꼽혔던 서울은 부진을 거듭하며 강등권으로 떨어졌다. 12경기를 치른 현재, 서울은 3승1무8패, 12개 팀 중 11위다. 8패를 당한 팀은 서울과 최하위 인천(4무8패) 뿐이다. 팀 분위기를 추스를 리더가 필요했던 서울은 다시 K리그 문을 두드린 기성용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계약 기간(3년 6개월)과 팀 내 국내 선수 최고 연봉(8억원·추정)은 선수 쪽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한다. 기성용은 “경기장 안팎에서 팀을 위해 희생하다 보면 나 자신과 팀 모두 자연스럽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믿는다”고 각오를 다졌다. 우여곡절 끝에 ‘K리그 유턴’을 선택한 기성용에게 기대할 게 많다. 무엇보다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역시나’라는 감탄사를 끌어내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축구 최고 스타답게 이야깃거리가 한정된 K리그에 풍성한 스토리를 덧입혀줄 것으로 기대한다. 앞서 유럽 생활을 접고 울산 현대에 안착한 ‘단짝’ 이청용(32)과 맞대결(다음 달 30일 울산-서울전)은 벌써 K리그 ‘킬러 콘텐트’로 주목받는다. 배우자(탤런트 한혜진)와 함께할 ‘한국판 베컴 부부’의 삶에도 큰 관심이 쏠린다. 20대 초반 한국을 떠났던 톱 클래스 선수가 30대가 되어 돌아왔다. 그 사이 세계 톱 클래스 선수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또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는 주장으로서 국민의 자긍심을 한껏 세워줬다. 팬도, 미디어도 돌아온 기성용에 대한 기대가 크다. 팀의, 리그 전체의 ‘얼굴’로서 활약해주기를 바란다. Time to work, Ki!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0.07.2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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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유상철에게, 지휘봉은 아직 이르다

프로축구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 경기가 열린 27일, 축구계 지인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유상철(49) 전 인천 감독과 마주쳤는데, 안색이 좋아졌다는 거다. 유 감독은 지난해 말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올 초 감독에서 물러나 항암 치료에 전념했다. 지인이 보여준 사진 속 그의 얼굴은 밝고 편안해 보였다. 혈색이 돌아와 발그레했다. 황달 증세로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지난해와 딴판이었다. 불과 하루 뒤 이번에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7연패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임완섭(49) 인천 감독 후임으로 유 전 감독이 거론된다는 얘기였다. ‘설마’ 했는데,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급기야 29일 “유 전 감독이 인천 사령탑에 복귀해 다음 달 4일부터 지휘봉을 잡는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팬들의 부정적 반응에 놀란 구단이 “유상철 전 감독의 건강이 우선”이라며 선임 의사를 백지화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기전까지 논란이 이어졌다. 유 전 감독 건강이 호전된 건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그는 힘겨운 항암 치료를 꿋꿋이 버텨냈다. 지난 주말 13차 치료를 끝으로 반 년간의 의학적 처치는 모두 마무리했다고 한다. 치료 초기에는 ‘어지럼증을 느껴 급히 병원을 찾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잠잠해졌다. 기대 이상 빠른 회복세를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팬과의 약속일 것이다. 유 전 감독은 인천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건강을 회복해 반드시 K리그 현장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동료였던 홍명보(51)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유)상철이는 힘든 항암 치료 과정에서도 늘 긍정적이었다. ‘건강해진 몸으로 팬 앞에 다시 선다’는 일념으로 견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없던 일이 됐지만, 아직 몸을 추스르기에도 힘겨운 그에게 지휘봉을 쥐게 하려 한 인천 구단은 비판받아야 한다. 전보다 호전됐다해도 아직 치료가 끝났다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 항암 치료 이후에도 힘든 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갈 길이 멀다. 인천 입장에서 ‘유상철 카드’는 연패로 바닥에 떨어진 팀 분위기를 단번에 끌어올릴 자극제다. 인천은 지난해에도 “죽더라도 그라운드에서 죽겠다”는 유 전 감독의 집념으로 기적처럼 강등을 면했다. 말기 암을 이겨내고 그라운드에 컴백한 사령탑의 성공담은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될 것이다. 인천이 유 전 감독 선임 여부를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그의 건강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팀 성적이 계속 부진해서 감독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래서 혹시 건강을 다시 해치는 상황이 온다면. 그렇지 않을 거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나. 그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은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멀쩡하던 지도자가 건강을 잃는 경우가 자주 있다. 최근 같은 인천 연고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염경엽(52) 감독이 경기 도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유 전 감독 또한 성적 부담감이 건강을 해친 요인 중 하나다. 그라운드에 선 유 전 감독을 다시 보고 싶은 건 모두 한마음이다. 다만 ‘완치’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인천은 당면한 성적 부진 때문에, 감동 스토리 욕심 때문에, 한국 축구 ‘레전드’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 부디 유 전 감독이 완쾌하거든, 그때는 꼭 그에게 지휘봉을 맡겨라.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2020.06.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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